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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지&테일러

with Myun @MyunQuest

 언젠가 간절히 바라고 바란 적이 있었다. 절망적이고 또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어떻게든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며 서로를 격려하며 조금이라도 희망이 보인다 싶으면 움직이지 않는 다리를 억지로 움직이던 때가 있었다.

 

 그 시절을 잊으려야 잊을 수가 있을까.

 

 얇지만 가볍지는 않은 바퀴가 자갈길을 밟으면 사람의 발소리와는 다른 소리가 들린다고 생각했다. 예를 들면, 마치 무언가가 짓이겨지는 소리. 그 소리는 비단 자갈길에서만 들리던 것은 아니었다. 포기할 수도, 그렇다고 되찾을 수도 없던 시절의 테일러 스텐은 그 소리가 자신이 찢겨나가는 소리처럼 들려 정말로 싫어했다.

 

 테일러가 두 다리를 되돌려 받은 후로 그와 그의 친우는 정말 다양한 곳을 돌아다녔었다. 보았던 풍경을 다시 보고, 새로운 장소를 찾아가고. 그가 가문의 유력 후계자로 다시 올라서면서 많은 시간이 도와주지는 못하였지만, 테일러는 여유가 생기면 케이지와 함께 저택을 나서 여행을 즐겼다.

 

 그렇게 적지만은 않은 지역을 둘러보고 남들이 절경이라 부르는 풍경들을 눈 안에 담았지만, 신기하게도 이곳을 다시 눈에 담으니 그 많은 경관들을 보았을 때보다도 더 큰 감탄이 터져 나왔다. 아마 경관 그 자체보다 마치 극적이라 할 수 있던 그 날의 기억들이 감상을 더해준 것일지도 모르겠다.

 

 퍼슬시.

 

 테일러에게 있어 퍼슬시는 마치 자신의 처지를 표현한 것처럼 느껴지던 도시였고, 자신에게 새로운 길을 내준 도시였으며, 사라진 전설 속에서 싹튼 새로운 전설을 마주한 도시나 다름이 없었다.

 

 언제 보아도 돌이 가득한 도시. 더 이상 그들을 버린 신을 찾지 않고서 소망을 쌓아올리던 이 땅을 두 사람은 절망 속에서 찾아왔었고 새로운 기회와 함께 떠났다. 그렇게 새로운 생을 얻고서 다시 찾아온 남자는 두 다리로 땅을 딛고 서서 마을을 돌아보았다. 케이지는 마치 들뜬 소년이라 할 법한 얼굴로 서 있는 제 친우를 보며 웃었다.

 

 “이렇게 오니 감회가 새롭지 않아?”

 

 마치 그의 속을 뻔히 들여다보았다는 듯이.

 

 물론 지금처럼 순수하게 기뻐하는 모습을 보면 놀려주고 싶어 하는 짓궂은 점이 있긴 했지만, 케이지는 오랫동안 테일러와 함께 해온 친우인 만큼 곧잘 그의 마음을 먼저 알아차리곤 했다. 그리고 그건 테일러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기에 마치 먹잇감을 눈앞에 둔 저 고양이 같은 눈이 원하는 바를 알 것 같아 재빨리 말을 돌려야 했다.

 

 “예전에 이곳에서 먹었던 맥주가 정말 그리웠는데 말이야.”

 “아, 거기 정말 맛있었지. 안주도 정말 최고였어.”

 “그래서 이번에도 거길 숙소로 정했어.”

 “이야, 역시 테일러 공자는 행동력도 뛰어나단 말이죠.”

 “최고의 신관님을 모시려면 이 정도는 거뜬하죠.”

 

 가볍게 웃으며 목적지를 정한 두 사람은 타고 온 마차를 먼저 보내고 걸어가는 것을 선택하였다. 항상 낮은 시선에서 바라보던, 항상 그의 뒤에서 지켜보던 도시의 거리였고 그렇게 떠났던 거리였다.

 

 슬쩍 테일러의 안색을 살펴보던 케이지는 간질거리는 속을 견디지 못하고 크게 웃었다. 테일러는 그런 웃음에 제 속이 들킨 듯 어색하게 웃었다.

 

 “하하, 좀 이상하려나. 다시 찾은 곳이 여기 뿐만은 아니었는데.”

 “이상하긴. 당연한 거야.”

 

 케이지는 호탕하게 웃으며 테일러의 등을 두드렸다. 조금 힘 조절이 잘못되었는지 요란한 소리가 났지만 개의치 않았다. 제게도 테일러에게도 그다지 문제가 될 일은 아니니까. 한참을 웃던 케이지는 그를 보며 두 팔을 벌렸다.

 

 그가, 자신이 이 퍼슬시에서 이렇게까지 즐거워 할 수 있는 것은 당연하고도 당연한 일이나 다름없었다. 그렇잖아.

 

 “테일러, 여긴 우리의 시작점이잖아.”

 

 너의, 나의. 그런 우리의. 그녀의 말에 테일러는 느릿하게 눈을 깜빡였다. 그녀가 하는 말을 모르거나, 이해하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이내 케이지가 그랬듯이 웃음이 터졌다. 지나가던 이들이 박장대소하는 두 남녀를 흘끗 보았지만, 두 사람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두 사람은 한참을 시원하게 웃고서야 감정을 진정시켰다. 얼마나 웃었는지 눈꼬리에 눈물까지 맺혀 손으로 훔쳐내야 했다.

 

 “케이지, 너나 나나 서로의 속은 잘 알고 있지만, 내가 너에게 얼마나 감사하고 있는지는 모를 거야.”

 “이야, 이거 참 우연이네. 나도 그런데.”

 “하하, 내가 그렇게까지 네게 해준 건 그렇게 많지 않은 것 같은데.”

 

 케이지는 당연하게 그의 고난을 우리의 고난으로, 그의 기쁨을 우리의 기쁨으로 이야기를 했다. 그런 제 친우의 헌신을 테일러는 그저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할 수가 없었다. 테일러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케이지는 저주를 품고서 그 원인을 끝까지 쫓아갈 것이었다. 그녀는 충분히 그럴 수 있는 능력과 힘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 마음만으로도 충분히 고마운 친우였다.

 

 반면에 테일러는 얼마 전까지도 어떠한 힘도 능력도 없었다. 그저 스텐가 내부에서 위태로운 위치만 있었을 뿐. 케이지가 곁에 없었다면 언제든 거센 물살에 휘말려 사라졌었을 수도 있었다. 이제야 힘이 생기기 시작한 자신이 그녀에게 무언가를 해줄 수 있었을 리가 만무했다.

 

 그러나 다시 한 번 팡, 하고 온힘을 다해 울려 퍼진 소리가 그 모든 것을 부정했다. 아까와는 차원이 다른 울림에 테일러의 몸이 휘청거릴 정도였다. 항변하려던 입은 부루퉁해진 표정에 다물리고 말았다. 내가 그런 생각은 하지 말랬지. 라고. 표정이 대신 말해주고 있었다. 결국 어색하게 웃었다.

 

 “오늘 저녁은 내가 쏘는 걸로 해도 될까요, 케이지 신관님?”

 “그 정도로 은근슬쩍 넘어가려고?”

 “물론 오기 전에 좋은 술도 미리 챙겨놨지.”

 “술로 나를 현혹 시키겠다?”

 “좋은 술은 좋은 깨달음을 주는 법이니까?”

 

 두 사람의 입 꼬리가 동시에 올라갔다.

 

 “분명 마음에 들어 할 걸?”

 “누가 선택한 건데 마음에 안들 리가 있겠어? 나 오늘 그 주점에 있는 고기란 고기는 다 털어버릴 거야.”

 “어련하시겠어.”

 

 두 친우는 곧게 뻗은 거리를 나아가며 함께 이 도시에 온 날을 떠올렸다. 아마 술안주에 섞어도 심심하지 않을 많은 이야기들이 나올 것이었다. 물론 심장에 걸려있는 이야기를 빼도 충분 할 테지.

 

 적당히 서늘한 바람이 시원하게 감싸왔다. 저녁시간이 오기 전 까지 도시를 전부 둘러보아도 괜찮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좋은 날이었다. 돌탑 쌓기를 한 번 체험해 보는 것은 어떨까. 평화로운 계획을 나누며 웃었다.

 

 발걸음을 따라 발아래에서 자갈이 자박거리며 노래를 불렀다. 휠체어 위에서 들었던 소리와는 별반 다를 것 없는 소리임을 깨달았음에도 이상하게 두 사람의 경쾌한 발걸음에 환호를 하는 것처럼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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