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타샤
with 신 @shen5376
끝없는 하늘은 모두 다른 모습을 가졌기에.
거대한 뼈대가 날아오르는 곳엔 검은 망토를 두른 이가 있었다. 하늘을 누비며 병사들의 지지를 받는 자. 적에게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늦게 발견될 네크로맨서, 그녀의 손끝을 따라 거미줄처럼 뻗어가던 검은 마나는 뼈를 이으며 몸을 부풀리고 손짓에 따라. 하늘에 수를 놓듯 들어찬 시체들의 군대는 지휘 끝에서 죽음을 불러왔다. 치열했던 전쟁의 종막이었다.
한순간 태양이 사라진 듯, 드넓은 하늘을 날던 본 드래곤의 그림자가 지상을 뒤덮으며 숲 한쪽으로 내려앉았다. 마지막이 될 전투를 끝내고 온 것의 검은 안광이 살아 있는 듯. 열감을 흩뿌리며 근처의 몬스터를 쫓아내곤 묵직한 날갯짓을 마지막으로 제 주인을 위해 몸을 숙였다. 그녀를 기다리던 일행과 타샤는 그 일련의 과정을 보며 시원한 미소를 띠곤 손을 흔들며 외쳤다.
“메리!”
“다녀왔습니다.”
이젠 기계 같지 않은 익숙한 목소리가 답을 하고 타샤는 그녀를 끌어안았다. 정답게 끌어안은 둘의 뒤로 어느새 모여 한발 물러나 있던 이들의 사이에서 작게 소음이 일었다.
메리야! 어서 와라! 통통한 용은 제 볼을 씰룩거리며 히죽 만면에 웃음을 띠었다. 그 모습에 다들 웃음을 터트리며 그녀를 반겼다. 스산하게 흔들리며 소릴 내는 어둠의 숲의 분위기와 대비되는 다정하고 평화로운 모습이었다. 메리는 동료들과의 이 평화로운 모습이 좋았다.
“고생했다.”
“고생했어. 잘했어.”
“맞다! 메리, 잘했다! 수고했다! 이제 우리 여행 갈 수 있다!”
작은 말들이 어깨를 두드리며 지나간 몇 차례의 인사가 끝나고 아이들은 재잘재잘 생각해오던 여행 계획을 떠들다 다음을 기약하며 각자 집으로 걸음을 바삐 옮겼다. 모든 것이 끝났기에 찾아온 평화 속에선 아직 해야 할 것이 많았다. 메리 또한 하고 싶은 일들이 많았다. 그러기 위해, 메리는 제 곁의 타샤와 걸음을 맞춰 옮기며 하늘을 보았다. 가벼운 발걸음 소리와 땅에 끌리는 로브의 소리가 그들을 뒤따랐다.
“아직, 하고 싶은 게 많습니다. 할 수 있는 것도 많습니다.”
“하지만 먼저 보고 싶은 게 생겼습니다.”
말을 시작하며 머뭇거림이 목소리에 묻어났다. 메리는 로브 속으로 꼼지락거리다 꾹 쥐어지는 자신의 주먹이 느껴졌다. 모든 것이 끝나면 가장 먼저 보고 싶은 게 있었다. 함께 하고 싶은 것이 있었다. 제가 보는 것을 다 함께 보고 싶었다. 멈추지 않고 이어가며 말하는 목소리가 자신의 옛 목소리와 겹쳐 들려왔다. 자신은 여전히 세상이 궁금했고 세상 밖으로 나가고 싶었다. 하지만 혼자가 아닌 함께 하고 싶었다. 검은 복면의 사이로 보이는 눈동자가 빛나며 하늘을 담았다.
‘세상 밖으로 나가고 싶습니다.’
“생명의 도시로 돌아가 그곳을 하늘에서 내려다보고 싶습니다.”
‘세상이 궁금합니다.’
“하늘에서 그곳을 내려다보면 어떨지 궁금합니다.”
‘아무도 피해 주기 싫습니다. 그래서 혼자 갈 겁니다.’
“이젠 위험하지 않으니. 함께 가주실 수 있습니까?”
울창한 숲의 틈새로 피어난 노을이 사라져간다. 어두워지고 있음에도 진 그림자가 무언가를 숨겨주려는 듯 길게 늘어졌다. 메리는 그 끝에서 검은 로브를 입고 있는 자신을 보았다.
끝없는 하늘은 모두 다른 모습을 가졌기에, 생명의 도시의 하늘이 궁금했다. 하늘 위에서 모든 것을 눈에 담고 싶었다. 제 기억의 한 없이 어둡고 푹푹 꺼지던 모래의 감촉이 여전할, 엄마의 목소리가 들려오던, 그리고 자신을 돌봐주었던 이들과 도시의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는 그 붉고 어두운 사막이 보고 싶었다. 그곳의 다른 모습이 보고 싶었다.
“집에 가는데. 허락이 필요할까? 함께 가자.”
함께. 시원한 웃음에 따라 입꼬리가 당겨졌다. 긍정의 답이 올 것을 알면서도 긴장하고, 듣고 싶었던 말을 들은 메리는 환하게 웃었다. 가려진 미소는 보이지 않았으나 그럼에도 타샤는 메리가 웃고 있음을 느꼈다. 고통스러울 통증을 달고서 세상 밖을 그리던 아이는 하늘을 날아오르는 어둠이 되어 나아가고, 결국 자신이 그리던 세상을 담아내고 있었다.
어둠이 하늘을, 아니 세상을 품었다. 빛은 홀로 고고히 빛나며 빛을 빌려주는 존재이나 어둠은 어둠을 머금고 삽시간에 더 커다란 어둠이 된다. 어느새 하늘을 집어삼킨 어둠은 검은 존재들을 품고선 작게 웃음 지었다.